8월 일요법회 0
 작성자: 경우스님  2012-08-09 08:41
조회 : 2,231  
8월 첫째주 일요법회


긴 장마가 지나고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볕은 따갑고 숨은 턱턱 막힐 지경입니다.
연일 열대야로 잠못 이루는 밤이 많습니다.
이 곳 장경사에도 한여름이 가득합니다.

이럴 때 에어컨 선풍기만 너무 사랑하지 마시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주변으로 시선을 돌려보시기 바랍니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이르기를,

菩薩이 若能隨順衆生 하면 則爲隨順 供養諸佛 이며
보살이 약능수순중생 하면 즉위수순 공양제불 이며
 
若於衆生에 尊重承事 하면 則爲尊重承事如來 며
약어중생에 존중승사 하면 즉위존중승사여래 며
 
若令衆生으로 生歡喜者 면 則令一切如來 로 歡喜 니 何以故 오
약령중생으로 생환희자 면 칙령일체여래 로 환희 니 하이고 오
(중략)
諸佛如來는 以大悲心 으로 而爲體故 로
제불여래는 이대비심 으로 이위체고 로

因於衆生 하야 而起大悲 하며
인어중생 하야 이기대비 하며

因於大悲 하야 生菩提心 하며
인어대비 하야 생보제심 하며

因菩提心 하야 成等正覺 하니라
인보제심 하야 성등정각 하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보살이 능히 중생을 수순하면
곧 모든 부처님을 수순하여 공양함이 되며,
만약 중생을 존중히 받들어 섬기면
곧 여래를 존중히 받들어 섬김이 되며,
만약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심이 나게 하면
곧 일체 여래로 하여금 환희하시게 함이니라.

모든 부처님께서는 대비심으로 체를 삼으시는 까닭에
중생으로 인하여 대비심을 일으키고,
대비로 인하여 보리심을 발하고,
보리심으로 인하여 등정각을 이루시니라.

라는 뜻입니다.
그래도 말이 어렵죠?

쉽게 풀어보면

“모든 중생에게 공양하는 일이 부처님께 공양하는 일이요,
모든 중생을 기쁘게 하는 일이 부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연민과 자애로 마음의 바탕을 삼으시기 때문이다”

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자비, 나눔과 봉사를 이르는 말입니다.
부처님 경전에
자비심을 일으키고 나눔과 봉사를 하라고 이미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스스로 자문해봅시다.
나의 삶도 자비와 나눔, 봉사로 충만해왔는가.
부처님 말씀을 따르는 불제자로서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가.

불교는 자비의 종교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을 것입니다.
알 듯 하면서도 또렷이 말할 수 없는 그것, 자비, 자비심...
자비는 바로 좀전에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나왔던 연민과 자애입니다.
연민과 자애...그것이 곧 자비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비심은 실천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자비라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천이 없다면 불교를 자비의 종교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실천하지 않는다면 불교를 믿는 불제자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것입니다.

자비의 발현은
마음에서 자비심이 일어나고,
그 자비심을 바탕으로 삶에서 구현되는 것입니다.
비로소 그때 불교라 할 수 있고, 불자라 이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비를 우리 삶에서 구현해나가면 좋을까요?
그것은 나눔과 봉사입니다.

자비심을 일으키고 나누지 않고 봉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죽어있는 불교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불교는
자비의 구현이라는 절대명제에 소홀함이 있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불교의 역할을
충실히 다해오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불자들 또한 자비실천 보다는 복을 구하려고만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과연 복 짓지 않은 이에게 복을 주겠습니까?

지금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기부재단이 있습니다.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아름다운재단...한번쯤은 들어보셨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수많은 기부재단 가운데
불교와 관련 있는 곳이 딱 한곳 밖에 없습니다.
불교가 그만큼 사회적 역할을 못한 것입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살아있는 불교로 거듭나야 하고, 참 불제자로 거듭나야 합니다.
중생에게 공양하는 것이 곧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라는 경구를
입으로만 줄줄 외기 보다는 나의 삶에서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과 손길을 보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일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나 홀로 시원한 방에서 맛있는 과일을 먹는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위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어떨까요.
둘다 하면 더 좋겠지요.
굳이 어려운 이들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삼복더위 속에서도 곳곳에서 땀 흘려 일하는 이들에게
기꺼운 마음으로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걸어 보시기 바랍니다.

“더운데 고생이 많으시네요. 고맙습니다.”

그에게는 그 말 한마디가
시원한 냉수보다도 청량한 보배로 느껴질 것입니다.

나눔이 돈을 얼마 갖다 주는 것만을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꿈도 나눌 수 있고, 지식도 나눌 수 있고, 기쁨도 나눌 수 있습니다.
먹거리도 나눌 수 있고, 힘도 나눌 수 있고,
복도 나눌 수 있고, 부처님법도 나눌 수 있습니다.

나눌 때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기부재단에 매달 5만원씩 기부하고 있는데,
그 돈이 아프리카 어린이에게 쓰였다.
그 어린이로부터 온갖 정성이 담긴 감사의 편지를 받았다.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인색합니다.
너무나 무심합니다.
남 일은 거들떠 보려하지도 않습니다.
내 아이는 소중해도 남의 아이는 소중한지 모릅니다.
심지어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삶을 곰곰이 돌아봅시다.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싶은 마음들을 다들 갖고 계시죠?
그런데 그렇게 못하고 삽니다.
어떤 이는 직접적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또 어떤 이는 귀찮아서 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누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에
스스로 위안을 삼습니다.
따져보면 그것은 위안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행복에서 멀어지게 하는
아주 좋지 않은 습관입니다.

TV를 보다가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면 돕고 싶습니다.
그런데 정작 돕지 않습니다.
마음은 생겼는데 돕기 위해서 뭐라도 하지는 않았다...이것은 돕지 않은 것입니다.
마음을 냈다고 도운 것이 아닙니다.
자비심을 내지 않은 사람이나 자비심을 낸 사람이나
결과는 똑같이 돕지 않은거 아닙니까?

나누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을 일은 아니란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그 지식을 나누지 못한다면 그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뭐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세요.
한사람 한사람이 각자 찾아도 좋고,
모임에서 같이 찾아도 좋습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큰 것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것은
곧 부처님께서 걸으신 길에 동행하는 것입니다.

다음 법회때 뵐 때는
각자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실천하고 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다들 흐뭇한 모습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뒤에 계신 부처님께서도 아마
지금보다 환한 모습으로 여러분을 맞아줄 것입니다.


모두 성불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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